[한민옥 칼럼] 제대로 된 서비스가 먼저다
[한민옥 칼럼] 제대로 된 서비스가 먼저다
  • 한민옥 기자
  • 승인 2018.11.1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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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짐이 좋지 않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조만간 대형 사건이 하나 터질 것 같다’.

요즘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소리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조마조마하다는 것이다. 혹자는 과거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의 붕괴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1998년 초 8조원도 되지 않았던 코스닥 시가총액은 벤처 열풍을 타고 1999년 말 100조원까지 치솟는다. 이어 2000310일 코스닥지수는 2834.4로 사상 최고치를 찍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벤처 붐이 꺼지고 같은 해 1226일 코스닥지수는 52.58로 곤두박질친다. 9개월 만에 무려 2781.72포인트가 폭락한 것이다. 그리고 그해 10정현준 게이트를 시작으로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등 일명 벤처 4대 게이트가 잇달아 터진다.

수많은 투자자가 하루아침에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그 후로 상당기간 벤처 시장은 꽁꽁얼어붙었다.

대체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장에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런 20여 년 전의 악몽까지 되살아나는 것일까.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아주 기우((杞憂))만은 아닌 것도 같다.

채굴형 거래소를 만들겠다며 투자자들을 모집한 '어빗'이 지난 9일 갑작스럽게 홈페이지와 채팅방을 폐쇄했다. 이 거래소는 자체 암호화폐인 '퓨어코인'을 싼 가격에 사전 판매하겠다며 투자자들로부터 이더리움을 받고서는 돌연 잠적했다. 피해액은 3040억원으로 추정된다.

최근 서울 강남 한 클럽에서 헤미넴으로 알려진 남성이 약 1억원 어치의 돈다발을 뿌렸다돈의 출처는 암호화계공개(ICO)로 모은 투자금. 업계에서는 이 남성을 포함한 일당이 ICO를 통해 3000~4000억원을 모은 후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얼마 전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악성코드를 유포해 PC 6000여 대를 감염시킨 후 암호화폐를 채굴한 일당 4명을 검거했다. 이른바 '크립토재킹'(cryptojacking) 범죄가 국내에서 적발된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피의자들의 신분이 충격적이다. 국내 암호화폐 관련 벤처 사업가, 정보보안 전문가, 쇼핑몰 및 가전 도소매업 대표 등으로 국제 해커집단이 아닌 업계를 잘아는 내부자들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정도 사건으로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 모두를 모럴해저드로 매도할 수는 없다. 과거 벤처 붐의 붕괴 때처럼 대형 게이트가 터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벤처 육성을 최우선 정책 기조로 삼았던 김대중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사실상 암호화폐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트린다. 시장이 이런 상태면 ICO 허용을 비롯해 정부의 암호화폐 정책 기조를 결코 바꿀 수 없다. 투자자들의 외면도 시간문제다. 무엇보다 한번 신뢰를 잃은 산업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이럴 때 일수록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는 기본, 즉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나 정치권에 무엇을 요구하고 바라기에 앞서 먼저 제대로 된 서비스를 보여주기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을 반신반의하는 것은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국내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의 보다 열정적인 기술 개발과 투명성 강화를 거듭 요구하는 이유이다.

한민옥 기자 mohan@thebch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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