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옥 칼럼] 개인간 주식대차는 되고 해외송금은 안되는 이유
[한민옥 칼럼] 개인간 주식대차는 되고 해외송금은 안되는 이유
  • 한민옥 기자
  • 승인 2019.04.29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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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샌드박스’ 시행 100일...블록체인 분야 외면 유감
정부 암호화폐 거부감 속 금융권 등 진입장벽 철옹성
최종구 금융위원장 국제 보조 맞춘 암화화폐 규제 시사
블록체인 스타트업 죽이는 무법 방치 더 이상 안 돼

정부가 신기술·신사업의 시장 출시를 가로막는 불합리한 규제를 면제·유예해 주겠다며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시행한지 100일이 지났다.

정부는 지난 117일 기업이 규제 존재 여부를 빠르게 확인받을 수 있는 '규제 신속확인'과 규제 적용 없이 제품·서비스의 시험을 허용하는 '실증특례', 일시적으로 시장 출시를 허용하는 '임시허가' 3종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에 따르면 100일 지난 현재 26건의 규제 샌드박스 승인이 이뤄졌으며, 5월 초까지 20여건을 추가로 심사할 예정이다. 정부는 여기에 금융혁신 분야와 지역혁신 분야에서도 본격적인 심사가 시작되면 올해 안에 100여건 이상 승인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성적은 규제 샌드박스 승인이 가장 많은 영국(연간 40여건)의 2배가 넘을 뿐 아니라, 금융 분야 중심인 외국과 달리 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적용 중이라는 점에서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 모델을 창출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자평이다.

바꿔 들으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분야에서 불필요한 규제로 신기술·신사업의 발목을 잡아왔는지 입증하는 말이기는 하나, 이제라도 정부가 규제 혁신에 팔을 걷어붙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부처 간 협의 부족, 과도한 서류 요구 등 그동안 지적돼 온 규제 샌드박스의 문제들도 국무조정실이 콘트롤타워로 나서겠다고 하니 개선을 기대해 본다.

그럼에도 정부의 이번 규제 샌드박스 초기 성적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해부터 국내외에서 가장 핫한 신기술·신사업이라 할 수 있는 블록체인 분야에서 승인을 받은 서비스가 단 1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엄밀히 따져보면 암호화폐를 활용한 블록체인 분야가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핀테크 분야다.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에게 규제 샌드박스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정부는 신기술·신사업을 육성하겠다면서 왜 규제 샌드박스에서조차 블록체인을 외면하는 것일까.

먼저 암호화폐에 대한 결벽에 가까운 거부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정부는 블록체인과 달리 암호화폐는 일관되게 부정해 왔다. 정부의 기조는 2017년 말 암호화폐 거래를 사실상 금지한 이후 '요지부동'이다. 업계가 자율규제안을 만들고, 정치권이 관련 법안을 내놓아도 여전히 암호화폐는 투기고, 암호화폐공개(ICO)사기. 직접 ICO 실태조사를 해놓고도 후속 대책은 없었다. 심지어 올해 다부처 공동 기획사업 과제에는 성범죄, 불량식품 근절과 함께 암호화폐 부작용을 포함했다. 이런 정부의 눈에 암호화폐 활용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는 블록체인 서비스들이 과연 신기술·신사업으로 보였을까?

여기에 기득권 세력의 보이지 않는 힘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ICT(정보통신기술) 규제 샌드박스 심의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블록체인 기반 해외 송금 서비스'가 그 예다. 관계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이 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심의 거부 이유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암호화폐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기존 금융권의 눈치를 봤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해외 송금은 은행의 전통적인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실제 대형 증권사와 손잡고 금융 규제 샌드박스에 도전한 블록체인 기반 개인투자자 간 주식대차 플랫폼은 단 번에 심의를 통과했다. 이 서비스의 경우 위변조 등 보안성 향상을 위한 기술로써만 블록체인을 활용한 데다, 무엇보다 기존 증권사의 영역이 아닌 개인 간 주식대차라는 새로운 분야라는 게 승인에 주효했다는 평가다.

결국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과하려면 전혀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억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블록체인으로 혁신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규제 샌드박스는 영원히 남의 떡이다. 그 정도의 혁신은 맘만 먹으면 기득권 세력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이미 규제 샌드박스에는 기존 금융회사 등이 제출한 블록체인 서비스가 다수 올라와 있다.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의 더욱 치열한 고민과 분발을 촉구한다.

아울러 정부도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하고 합리적인 정책 마련에 나서길 바란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FRB)에서 열린 금융안정위원회(FSB)에 참석해 암호화폐 규제 공백 없이 규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초국가적 협력이 필요하다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수립한 암호화폐 관련 자금세탁방지 국제 기준에 따른 국가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소 해석이 갈릴 수 있는 발언이나 개인적으로 국제 사회와 보조를 맞춰 우리 정부도 암호화폐 제도화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하겠다. 다만 그 전에 최소한 지침 정도는 시장에 전달해 주길 바란다. 국제 공조 기다리다 암호화폐 질서도 못잡으면서 블록체인 생태계만 고사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한민옥 기자 mohan@thebch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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