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정책, 쉬운 정답 대신 '깊고 넓게 멀리' 볼때
블록체인 정책, 쉬운 정답 대신 '깊고 넓게 멀리' 볼때
  • 박종백 법무법인(유) 태평양 변호사
  • 승인 2019.06.13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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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연구 거리를 쏟아내고 있다. 

 

2017년말부터 2018년 중반까지 전세계를 휩쓸었던 암호화폐 투자의 광풍 속에서 한국 정부는 모든 형태의 암호화폐공개(ICO)를 금지하는 대신 코인 없는 블록체인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거품이 지나가자 정부는 어떤 추가 규제나 법령의 제개정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금융위의 샌드박스 심사에 비상장기업의 주주명부를 블록체인화 한 것에 투자중개업 규제특례를 인정해준 것이 특기할 만한 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블록체인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연구거리를 쏟아내고 있다. 다양한 합의알고리즘 방식과 처리속도 등 기술의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부동산 등 자산을 담은 증권형 토큰을 기반으로 한 STO(증권형토큰공개), 거래소를 이용한 자금조달방식인 IEO(거래소공개)가 새로운 자금조달방식으로 부상했고 가격의 극심한 변동성을 없앤 스테이블 코인 등이 등장했다. 또 각종 산업에서 블록체인 모델의 효용성에 대한 논쟁이 백가쟁명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각국의 정책과 규제에서도 두드러진 변화가 있었다.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는 대부분의 ICO토큰이 증권에 해당함을 더 명확히 하며 공모규정 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했고 ‘토큰의 투자계약증권성에 관한 프레임워크(Framework)’를 발표했다. 스위스는 ‘블록체인에 관한 리걸 프레임워크(Legal Framework)’(입법이 필요한 법적 쟁점 종합분석 보고서)를 공개했고 일본은 금융상품거래법을 개정(암호자산을 금융자산으로 보고 관리업에 대한 규제 등 정립)했다. 몰타 역시 가상금융자산법(디지털자산과 ICO등에 대한 명확한 규제) 등을 개정했다.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새 기술과 사업모델이 부상하고 논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점’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실감하게 되는 혼란과 변혁의 시대이다.

사실 블록체인이 인류를 어디까지 데려갈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블록체인에 사람과 자금이 몰리는 것은 블록체인이 결국 개인들의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 주고, 언젠가 블록체인 모델중 어떤 것이 크게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는 전세계의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법률자문을 하고, 다양한 블록체인 모임에 참석하면서, 국내외의 창업자,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암호화폐의 투자나 자금모집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블록체인의 새 영역을 개척하는데 흥분에 가까운 열정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해외 교육이나 해외의 개발자, 기업들과의 협업 경험을 갖고 있어 시각이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는 경향도 가지고 있었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큰 아쉬움을 표했지만 법과 규제는 지킨다는 자세가 강했는데, 이는 비즈니스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한국의 규제가 사업모델을 금지하거나 억제한다고 판단되면 그에 친화적인 규제를 가진 다른 나라를 찾는데 거리낌이 없는, 국가 쇼핑(shopping)을 자연스러워 하는 경향도 보인다.

 

또 한편으로 블록체인의 이상인 탈중앙화의 이념과 관련한 혼란도 볼 수 있었다. 탈중앙화의 이념을 얼마나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실제 모델은 중앙화된 분산원장 프로토콜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용자들도 중계기관이 필요 없어지는 블록체인 이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투자하고 참여할 플랫폼은 믿을 만한 검증된 주체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개발과 관리해주기를 원하는 상충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불법의 방지와 혁신의 장려를 균형있게 고려하기를 희망한다. 

 

우리 정부의 회의나 자료에는 금기어가 있다고 한다. 구체적 연원은 모르지만, ‘코인, 토큰, ICO’가 그것이다. 토큰의 사기 등으로 인한 피해자 발생을 뿌리부터 방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추호의 이견은 없다.

그러나 피해발생이라는 현상을 좀 더 깊게 보면, 그 옆에는 블록체인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열정으로 합법적인 사업모델을 창안한 기업들도 있다. 또 정부의 금지만으로 불법행위가 근절되지도 않는다. 불법의 방지와 혁신의 장려를 균형 있게 고려하기를 희망한다.

위와 같은 금기어는 대기업의 경영진도 정부 방침에 밉보여서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사업개발을 위한 실무자들의 논의를 좁히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각 참여자의 자율과 존중이라는 블록체인의 이상의 기본을 이해하는지, 블록체인 산업육성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마저 드는 대목이다.

물론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는 국가가 국경 내에서 가질 수 있는 법체계를 뛰어 넘고자 하는 욕구들도 포함하고 있다. 하버드대학 버크만센터의 프리마베라 드 필리피(Primavera De Filippi) 교수의 지적처럼 블록체인이 정착되는 사회에서는 현재 형태의 법이 아니라, 미리 조건을 입력한 코드가 지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길 것이고 국가의 역할은 오랫동안 중요할 것이다.

 

최근 도쿄에서 개최된 G20 재무장관회의에서는 공동성명을 통해 암호화폐를 포함한 기술혁신은 경제체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자금세탁 등 위험은 경계해야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불법성의 우려와 암호화폐의 긍정적 역할을 함께 강조하지만 후자에 더 중점을 둔 그 취지를 정부도 깊이 있게 살피기를 바란다.

 

페이스북은 글로벌코인(Global Coin)이란 스테이블 코인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20억여 명의 이용자들이 중앙화된 페이스북 플랫폼뿐 아니라 플랫폼 밖에서도 지급수단, 송금 등의 용도로 쓰게 하겠다는 것이다. 탈중앙화의 이상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제3의 수탁자에게 코인발행 및 법정화폐 보관업무를 위탁하고, 거래원장을 기록할 노드를 20인으로 시작, 점차 늘려간다고 한다.

사용자들의 신원정보와 데이터를 관리하고 상업광고를 유치하여 성장한 페이스북이, 기존 비지니스 모델과 충돌되는 탈중앙화의 이상을 가진 스테이블 코인 비즈니스를 조화시키겠다는 것이 약간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면밀히 지켜볼 일이다. 각 국가에서 사용자의 확보와 규제방향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궁금하다.

 

블록체인의 이상실현에 이르는 과정에는 혼돈, 패러독스와 갈등이 있다. 이를 알고, 간단하게 찾을 수 있는 정답 같은 정책은 없음을 정부도 받아들여야 한다. 투기와 범죄행위에 이용될 위험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전면 금지할 것이 아니라, 혼란과 위험을 직시하면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슈를 깊게 보고, 주요국가와 국제적 동향을 넓게 보며, 블록체인의 미래를 최대한 멀리 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대체로 블록체인의 학습에 뛰어나고 적극적 투자자 및 시장참여자로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이 같은 점을 잘 활용하고, IT강국, 고속성장의 신화를 달성한 경험에 기초하여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적극 유치하고 테스트 베드가 되는 전략도 고려해 보면 좋겠다.

 

당장 시장에서 요청이 많은 법령정비도 제안하고 싶다. 소위 유틸리티 토큰에 대해서는 특별히 현행법에 문제되지 않는 한 허용한다는 방침을 가이드라인으로 밝히는 것이 어떨까. 증권에 해당하는 토큰에 대해서는 현재의 증권관련 법령을 기본적으로 적용하되, 혁신과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 필요하다면 추가 규제완화도 검토하는 것도 좋겠다.

 

블록체인 기반 토큰의 발행과 거래의 법적 성격이 무엇인지, 토큰 분쟁시 반환 받을 수 있는 법적 절차를 먼저 정립하는 것도 블록체인 강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블록체인에 등재된 개인정보나 데이터의 보안과 그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대책도 제도화하면 블록체인 육성을 천명한 정부의 입장에 실질적인 무게가 실릴 것이다.

현재 국회의원들이 제안한 법안들이 여러 개 있으나 주로 투자광풍의 원인제공자를 암호화폐거래소로 보는 전제 하에서 거래소 규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6월말 G20 정상회의에서 자금세탁방지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채택되는 것을 계기로 주요 규제와 법령 제개정 작업의 신호탄이 울렸으면 한다.

박종백 변호사
박종백 변호사


박종백 법무법인태평양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동 대학원 법학 석사, 런던 정경대학교에서 LLM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서울에서 열린 리눅스콘퍼런스에 패널로 참가해 오픈소스 라이선스를 처음 접한 이래 한국에서의 오픈소스 라이선스 관련 법률 영역을 개척해 왔다. 블록체인과 핀테크 등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법률자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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