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옥 칼럼] 블록체인과 ‘관피아’
[한민옥 칼럼] 블록체인과 ‘관피아’
  • 한민옥 기자
  • 승인 2019.06.14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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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블록체인협회, 2대 회장에 오갑수 전 금감원 부원장 내정
협회 차원 자율정화 나서야...업계도 뼈를 깎는 자성 필요
회원사-정부 잇는 제대로 된 관피아 역할 기대

기자를 하다보면 지겹도록 자주 듣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단어들이 종종 있다. ‘관피아’가 그 중 하나다. 관피아는 관료와 이탈리아 범죄조직인 마피아의 합성어로, 고위 공직자들이 퇴직 후 관련 기관이나 기업, ·단체 등에 재취업해 마피아처럼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말이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청피아(청와대+마피아)', '정피아(정치권+마피아)', '모피아(구 재정경제부+마피아)', '산피아(구 산업통상자원부+마피아)', '금피아(금융감독원+마피아)' 등이 쓰인다.

이런 관피아가 블록체인 판에도 등장했다. 업비트·빗썸을 비롯해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등 60여 곳의 회원사를 둔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최근 2대 회장으로 오갑수 글로벌금융학회장을 내정했다. 오 회장은 금융감독원 은행담당 부원장을 지냈으며 SC제일은행 부회장과 KB국민은행 사외이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금융경제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지내는 등 대표적인 경제계 친문인사로 통한다. 오 회장은 24일 협회 임시총회를 거쳐 정식 취임할 예정이다.

사이퍼펑크(cypherpunk)’ 사상에 뿌리를 둔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가 관피아를 회장으로, 그것도 삼고초려하다시피 해 영입했다고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아직도 한국블록체인협회와 회원사들이 정부의 변함없는 암호화폐 부정 기조를 고위층과의 네트워크 부재 탓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한국블록체인협회 2기 역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따지고 보면 블록체인 관피아의 시작은 한국블록체인협회 1기다. 주지하다시피 진대제 초대 회장은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다. 진 회장이 위촉한 협회 내 자율규제위원회 자문위원에는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형태근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송강호 전 경찰정 수사국장 등 전직 고위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성과는 미흡했다. 일부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자율규제 심사를 진행했고, 암호화폐공개(ICO) 가이드라인도 제안하기는 했으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 정치권과 소통을 위해 정책 간담회를 열었으나, 정부의 규제 아닌 규제를 바꾸기는 역부족이었다. 정치권의 행보도 말 뿐이었다.

암호화폐 거래소 등 블록체인·암호화폐를 둘러싼 문제는 한 두 명의 관피아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영향력 있는 인사가 나선다면 어느 정도 돌파구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종 돌파구를 뚫는 건 업계 스스로의 뼈를 깎는 자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 일각의 모럴해저드가 여전히 심각하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사기·보안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래서는 어떤 관피아가 와도 답이 없다.

마침 기회가 왔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Financial Action Task Force)21(현지시간)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암호화폐를 어떻게 관리 감독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포함될 예정이다.

FATF는 자금세탁, 테러자금조달 방지를 위한 국제기구다. FATF 가이드라인이 회원국 내에서 바로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건 아니나, FATF 기준에 미달하면 S&P,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의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올해 FATF의 상호평가를 받아야 한다. 암호화폐를 방치해 온 금융당국이 최근 들어 특정금융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특금법)’ 개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이유이다.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는 선제 대응으로 제도권 진입의 기회를 노려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신임 오 회장의 어깨가 무겁다. 회원사들의 대응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에 제대로 전달하기 바란다. 이미 업계에서는 송금시 정보보고 의무등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무엇보다 자율정화에 나서라. 협회가 직접 실태조사를 실시해 문제가 있는 회원사는 강력히 징계하고, 필요하다면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할 것이다. 투자자 보호도 뒷북성 주의 당부 정도가 아닌 선제적 경보와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블록체인협의 2기 출범과 함께 제대로 된 관피아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한민옥 기자 mohan@thebch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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